아탈란타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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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07년에 창단된 아탈란타와 1911년에 창단된 베르가마스, 베르가모를 연고지로 하던 두 팀이 1924년에 합쳐져 아탈란타 베르가마스카 디 지나스티카 에 세케르마(Atalanta Bergamasca di Ginnastica e Scherma)라는 이름이 되면서 모습을 드러낸 팀이다. 팀은 현재지역인 베르가모의 비알레 줄리오 체사레(Viale Giulio Cesare)로 1928년에 옮겼다.
세리에 A에서 가장 풍부하고 성과가 좋은 유스팜으로 유명하며[2][3] 클럽의 메이저 우승 트로피가 1962/63 시즌 코파이탈리아 트로피 1개에 불과한 평범한 세리에A의 중하위권을 도맡던 팀이'''었'''다.
그러나 2016년 가스페리니 감독 취임 이후 중상위~상위권 팀으로 도약했으며 16-17 시즌부터 꾸준히 세리에 상위권에서 놀고 있어서 이탈리아 내에서는 엄연한 강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18-19 시즌에는 리그 3위로 창단 첫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하며 구단 위상이 한 단계 더 높아졌고, 첫 출전한 챔피언스리그에서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게다가 19-20 시즌 리그에서도 3위에 오르며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연속 진출에도 성공한다.
2. 역사
1929년부터 이탈리아 리그에 참가해 하위리그에서 맴돌다가 세리에 A에 1937년에 승격했지만 그 시즌에 강등되었다. 다시 1940년에 세리에 A로 돌아오고 1959년까지 잔류했다가 또 강등되었고 세리에 B에서 1년있다가 다시 승격을 하였고 1973년에 또 강등되었다. 이렇듯 역사를 보니 중하위팀으로 강등을 여럿 하던 팀이다. 팀 역사상 가장 높은 1부리그 순위는 2019년에 기록한 3위.
1981년에 세리에 C1(3부리그)까지 떨어졌지만 한 시즌만에 2부리그인 세리에 B로 돌아왔고 1984년에는 세리에 A로 승격하였다. 하지만 이 뒤로 1987년, 1994년, 1998년, 2003년, 2005년, 2010년에 연이어 세리에 B로 강등당하면서 강등과 승격을 지겹게 하는 하위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세리에 B 역사상 최다 우승팀이 바로 아탈란타다.[4] 2011년에 세리에 A로 승격하였는데 이때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갓 승격한 팀이지만 하필 이탈리아 축구 스캔들에 휘말려서 시즌 시작전에 승점 6점을 감점당하는 징계를 받았음에도 팀은 선전하였고 13위로 순위를 마쳤다. 2013-14 시즌에도 남아있다. 13-14시즌 헬라스 베로나가 전반기 돌풍의 주역이였다면 후반기는 파르마 FC와 아탈란타의 흔들기가 빛났다. 리그 초반부터 중위권에 안착하더니 유로파권까지 진입을 노리다가...실패. 그래도 강등 걱정을 하지 않았던 서포터들은 뜻있는 1년을 보내게 되었다.
2.1. 2016-17 시즌
갑자기 2016-2017시즌에 뜬금없이 리그 4위를 했다. 이는 팀의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케시에 & 칼다라, 콘티) 적절한 시점에 올라온 것과 팀의 핵심인 알레한드로 고메즈가 세리에 원탑급 퍼포먼스를 펼쳐준 것이 시의적절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케시에와 콘티는 리그 빅클럽들에게 지체없이 뜯겼다.(...)
2.2. 2017-18 시즌
17-18시즌 유로파 리그에선 E조에 배정됐는데, 하필이면 에버튼 FC와 올랭피크 리옹도 들어오며 졸지에 죽음의 조가 완성됐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홈과 원정에서 에버튼을 털어 먹고, 리옹과는 1승 1무를 거두며 무패로 32강에 진출하게 된 것. 32강에선 챔스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나게 됐다. 원정에선 두 골이나 넣었음에도 아쉽게 3:2로 패배했고, 홈에선 선제골을 넣으며 도르트문트를 탈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듯 했으나 아쉽게 막판에 동점골을 얻어 맞으며 아쉽게 32강에서 탈락하게 됐다.
2.3. 2018-19 시즌
18-19시즌 유로파 리그 최종 플레이오프까지 무난히 진출했으나 FC 쾨벤하운을 상대로 경기를 압도했음에도 결국 득점에 실패하며 승부차기 끝에 패배,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35R 기준 아탈란타는 3위 인터밀란과 승점 1점이 뒤쳐진 4위에 자리 잡으며 리그를 순항 중이며 챔스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라치오를 만났다. 리그에서 3:1로 꺾은 만큼 자신감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쉽게도 라치오에 0:2로 지면서 우승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컵 준우승과는 별개로 챔스권을 노리는 자체가 시즌 전 크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에 아탈란타로서 이번 시즌은 크게 성공한 시즌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최종 승점 69점으로 리그 3위의 성적을 기록하며 창단 첫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의 감격을 맛봤다.
2.4. 2019-20 시즌
리그에서는 저번 시즌에도 세리에 1위를 기록했던 득점력(77득점)이 더욱 강력해져 무려 98득점을 기록했다. 리그 후반기 라치오 인테르가 주춤하는 사이 2위로 치고 올라오며 유벤투스와 우승 경쟁을 하나 싶었으나 32R 유벤투스 원정에서 아쉬운 무승부, 34R 헬라스 베로나 원정 1:1 무승부 36R AC밀란 원정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고 2위 경쟁자였던 인테르에게 패배하며 3위로 시즌이 종료되었다. 그래도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사수하며 좋은 시즌을 보냈다.
처음으로 진출하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맨시티, 디나모 자그레브, 샤흐타르와 같은 조에 배정이 되었다. 2위 싸움에서 나름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1, 2, 3차전 3연패로 조기 탈락 위기에 놓였다. 특히 자그레브 상대로 대패를 하는 등 처참한 경기력을 보였다. 그러나 남은 3경기 홈에서 맨시티와 무승부, 자그레브를 2대 0으로 잡더니 마지막 경기 샤흐타르 원정경기에서 후반에만 3골을 몰아쳐 극적으로 구단 역사 최초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3차전까지 모두 지고도 16강에 진출한 사례는 아탈란타가 최초. 덤으로 첫 챔스 진출에 토너먼트까지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16강 상대로는 발렌시아 CF를 만나게 되었다. 홈에서 열린 16강 1차전에서 4:1 대승을 거두며 챔스 8강 진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무관중[5] 경기로 펼쳐진 16강 2차전 원정경기에서도 4:3으로 승리하여 구단 역사상 최초 챔스 8강에 올라가는 드라마를 연출하였다. 일리치치에게는 이 경기가 특히나 기억에 남을텐데, 호날두를 제치고 챔피언스리그 원정 역대 최고령 해트트릭 달성자라는 기록과 챔피언스리그 최초 원정 4골 득점자라는 기록을 세웠다.[6] 첫 챔스출전치고는 여러모로 역사를 써내려가는 아탈란타이다.
단판전으로 진행되는 8강에서 파리 생제르맹 FC를 상대하게 되었다. 단판제라는 큰 변수 속에서 미칠듯한 속도와 공격력을 자랑하는 아탈란타가 저번 시즌의 아약스나 토트넘처럼 요주의 팀으로 떠오르는 중. 한편 리그 재개 이후 전승가도를 달리며, 재개 이전까지 합하면 리그에서만 무려 9연승을 기록 중이다. 그리고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전반 26분 선취골을 넣고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이 보이는가 했으나 후반 90분과 추가시간에 실점당하면서 역전패당하여 8강에서 멈추게 되었다. 비록 탈락했지만 객관적 전력상 한수 위였던 파리 상대로 공격적으로 밀리지 않는[7]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줬으며, '''파리를 탈락 직전까지 몰고가는 명경기를 펼쳤다.''' 구단 공식 트위터도 패배 후 "고개를 들어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라는 식의 멘트로 소식을 알렸고, 가스페리니 감독도 "모든걸 쏟아부은 이 청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스쿼드 격차에도 불구하고 졌지만 잘 싸운 선수들을 격려했다.
2.5. 2020-21 시즌
3. 여담
- 팀의 유일한 우승컵은 1963년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한 것. 더불어 2부리그 시절인 1987-88 UEFA 컵 위너스컵(유로파 리그 전신 중 하나로 리그컵 및 FA컵 우승팀이 참가하는 대회이다.)에 참가하여 4강까지 오르는 이변을 낳았다. 이는 위너스컵 역사상 딱 2번 뿐인 하위리그 팀으로서 대회 4강에 진출한 기록이다. 그리고 4강에서 벨기에구단인 KV 메헬렌에게 패했는데 결승에 올라간 메헬렌은 아약스를 제치고 대회 우승을 거뒀다. 참고로 위너스컵에서 2부리그 팀으로 4강에 올라간 또다른 1팀이 바로 카디프 시티로 2부리그 시절인 1967-6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4강에 올라갔던 바 있다.
- 19-20 시즌 기준, 전 유럽에서도 뮌헨[8] 과 맨시티 정도를 제외하면 따라갈 자가 없는 수준의 화력을 자랑한다. 앞의 두 클럽과의 재정 및 스쿼드 격차, 세리에 A 특유의 수비적인 리그 특성을 고려하면 공격에 있어선 정말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셈이다. 수비력은 냉정히 말해 좋은 편이 아니나 그걸 엄청난 골 수로 커버하는 팀이다.[9]
- 이렇듯 팀에 이렇다 할 스타급 플레이어는 없음에도 매 경기 쏟아내는 화력이 뮌헨, 맨시티, 파리같은 타 리그 최정상급을 넘어 챔스 우승도 노릴만한 강팀들에 필적할 수준이다. 이는 가스페리니 감독 취임 이후 날이 갈수록 더 두드러지는 점으로, 챔스에서도 이런 엄청난 폭발력으로 발렌시아를 홈과 원정 양쪽에서 모두 관광을 보내버리고 파리조차 탈락 직전까지 몰아갔으며, 세리에 우승을 노리는 유벤투스나 인테르에게 잊을만 하면 코파나 리그에서 매운 맛을 보여주곤 한다. 그야말로 닥공 축구의 화신같은 팀. 이러한 화끈한 경기 스타일 덕분에 최근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축구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4. 현재 스쿼드
5. 영구 결번
- 12번은 팬들의 번호로 지정되었다.
- 14번은 1997년 교통사고로 숨진 피사니를 기려서 영구결번하였다.
- 80번은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엘리오 코르바니의 번호로 영구결번하였다.
6. 여담
- 인테르와 같이 팀의 대표색이 검정/파랑인데 아탈란타의 성적이 더 좋을때면 진정한 네라주리(Nerazzurri;검/파)는 아탈란타라는 드립이 흥한다. 공교롭게 베르가모와 밀라노는 거리도 매우 가깝다.
- 대륙 대회에 모습을 보이는것도 아니고 특출난 유명선수도 없었기에 세리에 팬이 아니라면 인지도가 떨어지는 팀이지만 응원가 하나는 상당히 좋다. 직접 들어보자. 이 노래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원래 구단 응원가라는게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지만 전체적으로 반응이 좋다. 그도 그럴것이 첫번째 노래는 이탈리아의 유명 밴드가 만든 노래다. '아탈란타는 들어본적만 있는 관심없는 팀이지만 노래는 좋네?'라는 댓글이 많다.
- 워낙 유스 시스템이 좋은 팀이고, 굳이 유스 시스템이 아니라 2020년 현재 전력만 보더라도 세리에 A 4위에 유럽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오르는 등 전력 자체가 객관적으로 좋은 편이라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도 사수올로와 더불어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인다. 사수올로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에 이름을 올리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아탈란타는 가끔씩 리그 우승도 하는 수준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빅클럽은 아니라 경쟁자들에게 좋은 선수들을 뺏기는 편이고 이 때문에 왕조를 구축한다든가 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지만 현실보다 이것저것 따지는 점이 적은 게임 특성상 유망주가 팔려나가는 속도보다 새로운 유망주들이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서 전력은 유지되는 편이다. 더구나 컴퓨터판보다도 단순한 모바일판의 경우에는 유망주 시스템이 곧 팀의 전력이나 다름없게 되어서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4강에 드는 등 매우 강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계속 리그 상위권에 머물며 첫 챔스 출전에도 8강을 찍고 해당 시즌 준우승팀인 파리와 렬전을 벌이는 등 이걸 조금씩 실현해내고 있다.
- 영구결번이된 페데리코 피사니는 세리에 A에서 통산 44경기에출전하여 5골을 넣었다. 피사니는 1997년 2월 12일 여자친구 알레산드라 미달리와 2명의 친구와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그렇게 카지노 디 캄피오니 디탈리아란 이벤트홀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피사니와 피사니의 여자친구인 알레산드라 미달리는 그자리에서 사망했고 두 친구는 아무 부상없이 멀쩡했다.피사니의 나이는 고작 22세였고 피사니가 사망한 도시는 밀라노였고 그가 몬 차는 BMW 320 컨버터블이었다. 참고로 피사니의 고향은 토스카나에 있는 인구 약 4만6천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인 카판노리이다.커리어는 1992년부터 그가 사망한 1997년까지는 아탈란타 소속이었으나 1993년에는 몬짜에 임대되었다.
[1] 2020년 포브스 발표 이탈리아 부호 36위. 1970-77 아탈란타에서 선수생활도 했었다. 화장품 유통업체 Kiko Milano 창업주임.[2] 18/19시즌 기준 무려 63명의 임대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3] 다만 1군팀에서 포텐이 터지면 바로 상위 클럽에 팔아버리기 바빠 가스페리니 감독이 이렇게 해서는 성적을 유지할 수 없다며 대놓고 빡친적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시즌 초반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가스페리니 취임 이후 매년 성적이 중상위권에서도 조금씩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4] 제노아와 함께 5회 우승.[5] 스페인의 코로나19 감염 확산 사태로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었다.[6] 심지어 일리치치는 이날 4골을 득점하고 받은 축구공을 병원에 기부했다고 한다.[7] 특히 전반전엔 슈팅(유효슈팅) 갯수가 5(4) vs 3(1)일 정도로 공격적으로 그 네이마르의 파리를 압도하였다.[8]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에서만 100골을 득점. 경기당 거의 3골을 몰아쳤다. 코바치 사임 이후 득점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에 이걸 감안한다면 더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갖췄다.[9] 리그에서만 25라운드 기준 34실점이나 무려 70골을 넣었다. 코로나 재개 이후엔 세리에에서 유일한 무패를 달렸으나, 유벤투스 원정에서 두번의 PK로 인해 2-2로 종료, 연승행진이 끝나버렸다. 마지막 패배가 12월 15일 볼로냐 원정이고, 리그 최소실점팀 라치오도 무참히 박살내는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